Critical Race Theory: 미국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요소
Critical Race Theory란?
줄여서는 CRT, 한국말로 번역하면 비판적 인종 이론이라고 한다. 비판적 인종 이론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하기 전에, “Critical Theory” (비판 이론)이 뭔지 부터 알아보자. “Critical theory is a social philosophy pertaining to the reflective assessment and critique of society and culture in order to reveal and challenge power structures.” (위키피디아에서는 비판이론을 사회와 문화를 비판하며 그 권력 구조를 연구하고 도전하는 사회철학이라고 한다)
그래서 Critical Theory에 Race라는 요소가 들어가니까 Critical Race Theory는 인종을 중심으로 사회와 문화를 비판하고 그 권력 구조를 연구하고 도전하는 사회철학이라고 봐도 될것같다.
비판적 인종 이론의 대표적인 저자중 한명인 Richard Delgado가 편집한 책 “Critical Race Theory: The Cutting Edge”의 첫 장에서 Ian Haney Lopez는 아래와 같이 서술한다.
“1806년 당시의 법에 따르면 노예 신분은 모계 혈통을 따라갔다. 노예 여성에게 태어난 자는 노예였고 자유로운 여성에게 태어난 자는 아니였다. 해당연도에 버지니아주에서 3세대에 걸쳐 노예의 삶을 살았던 가족이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소송을 걸었다. 자기들의 모계 조상은 노예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에서 이러한 주장에 근거가 될만한 것은 본인들의 얼굴과 몸뿐이였다.”
“라이트 가족: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딸은 모계 조상을 증명 할 방법이 없었다. 주인인 허진스도 마찬가지로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이럴 경우에는 입증책임이 있는 쪽이 진다. (burden of proof: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면 당사자의 주장은 존재 하지 않은 사실로 치부됨). 그리고 입증책임을 져야하는 쪽은 인종에 따라 달라진다. 버지니아주의 법에 따르면 백인과 인디언 (미국 원주민)들은 노예가 아니라고 추정했기 때문에 백인이나 원주민을 노예라고 주장하는 쪽에게 입증책임이 있다.라이트 가족이 흑인이고 그로인해 노예인걸로 추정된다, 혹은 원주민이고 노예가 아닌 것으로 추정하기 위해서는 재판장에서 판사 터커가 인종 검사를 했다:”
이는 1806년에 열린 Hudgins vs. Wright라는 판례를 해설하는 내용인데 결국 판사는 라이트 가족의 피부 색깔과 이목구비 (더 구체적으로는 코의 너비) 그리고 머리카락을 보고 흑인의 후손이 아니라 원주민과 더 흡사하다 판단하여 라이트 가족들에게 손을 들어줬다.
그리고 우리 삶의 모든 요소는 필연적으로 인종에 의해 결정되고 영향 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면, 취직할때, 대출, 보험, 심지어 차를 살때도 영향 받는다고 말하고 있으며 정치적 성향에까지 스며든다고 한다. 선거구, 지역, 주, 연방 예산 책정, 정치적 연합의 생성과 몰락, 사법기관의 태도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그래서 CRT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권력 구조는 white privilege (백인 특권)과 백인우월주의에 근간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인종 권력은 장기적으로 유지된다고 한다. 그리고 법이 인종 권력 유지 수단으로 사용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유지 되고 있는 인종 권력으로 유색인종은 marginalization (사회에서 소외)를 겪는다고 한다.
그래서 CRT가 어떤식으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저번주에 열린 트럼프와 바이든간의 첫 대선 토론 도중에도 조 바이든은 트럼프에게 “백인우월주의 단체들을 비판해라”고 요구했다. 왜냐하면 비판적 인종 이론에서 논하는 인종에 따른 사회 권력 구조에 동의하고 이 시스템을 전복 시키려는 Antifa와 같은 단체들이 민주당의 주축을 지탱하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안티파 그룹들은 백인우월주의를 미국 사회에서 불평등을 야기하는 중대한 사회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바이든이 트럼프에게 백인우월주의자들을 비판하라고 했을때 바이든은 Proud Boys (프라우드 보이스) 를 예를 들며 그들을 직접 비판하라고 했고 트럼프는 이에, “Stand down, stand by”라고 했는데 좌파 진영에서는 이 대답은 프라우드 보이스를 두둔한 것으로 해석해서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트럼프가 과거에 거듭 백인우월주의자 단체들을 비판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으며 더 중요한건 프라우드 보이스의 대표 Enrique Tarrio는 백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토론 직후에 다시 프라이드 보이스를 언급하며 “그런 단체가 존재하는줄도 몰랐다”고 하면서 어쨋든 그들에게 자중할것을 권고했다. (왜냐하면 프라우드 보이스와 안티파가 격돌하여 폭력 사태가 일어나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에)
반대로 트럼프가 바이든에게 Antifa를 비판해보라고 했을때 바이든은 “안티파는 단체가 아니라 이념일뿐이다”라고 하며 답변을 회피 했다. 그에 대해 트럼프는, “웃기지 말라”며 “만약에 안티파를 비판하면 니 지지도가 떨어지니까 못하는거잖아”라고 쐐기를 박아버렸다. 실제로 FBI 국장이 미대선 토론 한 달전 쯤에 안티파는 조직이 아니라 사회운동의 한 종류로 봐야한다고 했지만, 소규모의 조직들이 각지에 풀뿌리 조직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을 들며 distributed organization (분산 조직)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여튼 미국 민주당도 이들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게, 중도 좌파에 비해 그 숫자는 적을지라도 이들이 끼치는 파급력이 엄청나기 때문에 극좌가 지지하는 비판적 인종 이론에도 동조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극좌 이데올로기에 꼼짝 못하는 민주당의 행태에 지쳐서 공화당을 지지하고 나서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중도층이 좌에서 우로 옮겨가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론 조사를 하면 십중팔구 조 바이든이 우세하다고 나온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해서 이런 여론 조사를 다 믿지는 않는다. 아무리 여론 조사에서 바이든이 우세하다고 나와도 사실 2016년 이후로 여론 조사를 불신하는 경향이 매우 강해져서 그걸 믿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비판적 인종 이론을 둘러싼 논쟁과 현상들
비판적 인종 이론을 믿는 사람들은 인종과 사회경제적 지위간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알다시피 양극화가 매우 심각한 나라다. 그래서 미국처럼 인종 차별의 역사가 수 백년이 넘는 나라에서는 불평등과 인종에 대한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사실 비판적 인종 이론에서 주장하는 원리, 즉, 인종에 의해 한 인간의 운명이 정해지는 것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까 전에 봤던 책의 첫 장에서 서술하듯이, 인종에 따른 각종 정부 혜택, 보험료, 대출 기준, 사법 기관의 태도 등이 달라지는 일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비판적 인종 이론이 모든 사회 갈등의 원인을 규명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보자면, 한 가지 물리 현상으로 자연계 전체를 일반화하여 설명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오류에 봉착하게 되듯이 인종이라는 개념 하나를 바탕으로 만든 사회철학 이론으로 현 미국 사회의 불평등과 권력 구조를 설명하기에는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건 인종도 있지만 거주 지역, 가족 관계, 경제력, 아이큐도 개개인의 삶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이런 미시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인류학, 지정학, 기술의 발전 등과 같은 거시적인 요인들도 고려해야한다. 내 생각에는 다른 환경적 요소는 배제한체 인종만 가지고 현재의 권력 구조를 설명하려고 하는건,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단순한 논리로 너무나도 복잡하고 다원적인 각 개인의 삶, 그리고 이 세상의 섭리를 일반화하려는 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비판적 인종 이론의 이면에는 또 재밌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백인들을 일반화하여 모두 압제자로 정의한다는 점은 백인들뿐만 아니라 의외로 유색 인종들의 심기도 불편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유색인종들 사이에서도 본인의 성공을 “인종에 의해 결정된 당연한 결과”가 아니라 “그런것과 상관 없이 내가 성취해낸 결과물”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즉, 이 사람들은 자기의 인종(집단)보다 자기 자신(개인)의 노력이 자기 삶에 더욱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렇게 “개인의 책임”을 무한대로 책정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번 첫 미국 대선 토론에서 언급된 프라우드보이스들이다. 이들은 비판적 인종 이론을 필두로하는 미국 좌파의 집단주의에 반하여 굉장히 짙은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가졌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인종에 따른 권력 구조라는 개념에 반대할 수 밖에 없다. 허나 진영 논리에 빠져 있는 있는 미국 극좌의 시선으로 보면 이들은 백인우월주의자로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프라이드보이스 같은 단체가 KKK와 같이 백인우월주의자 집단인것처럼 교묘하게 프레임을 짜서 트럼프를 공격하려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만 극좌의 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민주당의 거짓말들은 중도좌파들이 보기에 어떨까? 특히나 유색인종의 눈으로 봤을때는 인종 갈등을 이용해 본인들이 혜택을 보려는것처럼 보일 것이다. 최근의 시위와 폭동에 의해 되려 인종차별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색깔을 드러낸 안티파를 감싸고 도는 민주당을 떠나는 중도층 중에서는 이런식으로 민주당의 행태에 분노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극좌에 질린 사람들이 향하는 곳?
PC, cancel culture, identity politics에 반대하며 메인스트림 미디어의 의견에 반대하는 지성인들이 이루고 있는 느슨한 네트워크라는 뜻에서 유래된 이름인 “Intellectual Dark Web” (지성인의 다크웹)이라는, 공식 단체는 아니고 매체와 학계에서 활동하는 여러 사람들을 묶어서 부르는 이름이다. 다만 여기에 속한 사람들은 꼭 우파가 아니고 좌파 성향인 사람도 많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는 조던 피터슨, 벤 샤피로, 샘 해리스, 조 로건, 데이브 루빈이 있다.
벤 샤피로나 조던 피터슨 같은 경우에는 individualism (개인주의)라는 가치에 굉장한 초점을 둔다. 그래서 이들은 collectivism (집단주의)적인 성격이 매우 강한 안티파라거나 PC와 같은 개념들과 대립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항상 좌파의 타겟 되고 있다.
조 로건의 팟캐스트 같은 경우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조 로건은 자기의 팟캐스트를 IDW 관련된 사람들을 꽤나 자주 출연 시킨다. 그래서 이들이 가진 영향력은 막강하다. 한국도 이제 거의 공중파보다 유툽이 인기가 많듯이 미국도 메인스트림 미디어보다는 이런 지성인들이 제작하는 유툽 영상들과 팟캐스트들을 중심으로한 대안 미디어가 굉장히 인기가 많다. 그리고 조 로건의 팟캐스트들의 시청자층의 성향을 보면 대체로 반PC적인 성향이 강하다.
첫 미국 대선 토론을 조 로건의 팟캐스트에서 진행하자는 농담 아닌 농담이 나온적도 있는데 이에 좌파 진영에서는 조 로건더러 “너무 편향된 정치적 견해를 가졌다”고 하며 그를 토론 사회자로써는 불합격이라고 했다.
내 생각에는 미국의 민주당 지지자들이 오히려 더 극좌에 가까운 성향을 띄게 본인들의 입장에 대해서 자각하지 못하는것 같다. 왜냐하면 중도 좌파/우파라고 자칭하는 사람들 중에는 안티파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찾기 어렵고 민주당이 극좌 이데올로기와 타협을 보는 것을 못 마땅하게 보는 사람들은 극좌가 아니기 때문이다.
요약
요약하자면 비판적 인종 이론은 미국의 좌파에서 쓰이는 양날의 검과 같은 개념이다. 이걸로 일부 사람들 (극좌)를 얻을 수 있지만 나머지 (중도좌파)는 잃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이론을 바탕으로 펼치는 전략들에는 교묘한 속임수가 있을때가 많아서 더욱더 지지자를 잃는 속도가 빨라지고 기존 언론 매체들이 상당 부분 점유하고 있는 미디어 헤게모니의 전환을 가속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