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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미국 대선: 환상과 현실의 알고리즘

대망의 2020년 미국 대선. 조 바이든의 승리로 기우는 가운데 트럼프 진영에서는 부정 선거를 근거로 아직 승복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측에서는 2000년 대선의 Bush v. Gore 판례를 근거로 삼으며 개표 과정이 공정하지 않았다는 논리로 선거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트럼프측의 주장과는 상관 없이 미디어에서는 이미 바이든측의 승리를 축하하고 있고 바이든 지지자들도 길거리에서 자축하고 있다.

트럼프가 쫓겨난게 마냥 좋은 사람들

승리를 자축하는 바이든 지지자들은 머지 않아 미처 인지하지 못한 현실을 직시해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상원의석과 하원의석 현황을 보면 공화당이 상원에서 조금 앞서고 있고 하원에서 5석이나 뺏어왔기 때문이다. 만약에 공화당이 상원의 과반의석을 차지하게 된다면 바이든 행정부의 앞날이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을것이다.

좌: 상원의석 현황 우: 하원의석 현황

분명히 대선에서는 승리했는데 어떻게 상원과 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밀렸을까? 내가 인터넷에서 바이든 지지자들의 댓글과 인터뷰 등을 보면서 느낀 것은, 이들은 바이든을 지지한다기보다는 그냥 트럼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데이터를 보면서 내 생각이 맞는지 확인해봤다.

뉴욕 타임스에서 발표한 출구 조사에 따르면 투표에 참가한 사람중 24%가 “상대 후보에 대항하기 위해서” 투표를 했다고 하는데, 이 사람들중에서 71%가 트럼프에 반대하기 위해서 바이든에게 표를 줬다고 한다.

“트럼프가 아니여서”

또 다른 출구 조사 항목으로 정책 vs 인성을 비교하는 것도 있었는데, 각 후보의 정책을 보고 투표했다는 항목에서는 트럼프 지지자 비율이 52프로로 바이든 지지자의 47프로보다 약간 높았고 각 후보의 인격을 보고 뽑았다고 응답한 사람들중 66%가 바이든 지지자였다.

“인격이 훌륭해서”

위의 통계들을 요약한다면, 바이든 지지자들중에 “그냥 트럼프가 싫어서” 바이든에 표를 준 사람들이 적지 않은 비율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사람들은 바로 이 사람들이 아닐까?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

“We don’t want Biden- We want revenge” (우린 바이든을 원하지 않아- 복수를 원해)라고 적혀있는 이 현수막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분명히 바이든을 지지 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누굴까?

미국의 좌파에서도 anti-war left (반전 좌파)와 극좌를 표방하는 progressive left (진보좌파)는 구분해야한다. 반전 좌파는 말 그대로 미국이 세계 각지 분쟁에 개입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반대하는 성격을 가진 집단을 말하고 미국의 극좌를 표방하는 progressive left는 비판적 인종이론을 기반으로 미국의 각종 사회 문제를 백인우월주의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집단을 말한다.

그런데 반전 좌파 같은 경우에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매우 실망한 이력이 있는 집단이다. 왜냐하면 오바마는 집권초에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군을 철수 시킬것이라고 약속한 것과 정반대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포함하여, 시리아, 리비아, 예멘, 소말리아, 파키스탄에 드론 폭격을 명령하고 특수 부대들을 수도 없이 파견하는 등 미국을 끝나지 않는 전쟁 (permanent warfare)으로 끌고 갔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약 10년전에 월 스트리트 점령 시위를 주도했던 골수 좌파였던 반전 좌파는 아이러니하게도 월 스트리트의 상징인 트럼프가 중동에서 평화 협정을 차례대로 진행 시키는 장면을 보며 오바마와 민주당을 더욱더 경멸하게 된 경우가 많고 이들은 서서히 트럼프 지지층으로 돌변하고 있다.

이 중에서 미래에 자기가 트럼프를 지지하게 될거라고 상상해본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뿐만 아니라 progressive left에서도 딱히 바이든이 좋아서 뽑은건 아니다. settleforbiden.org 라는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이 사이트는 버니 샌더스와 엘리자베스 워렌 지지자들이 트럼프를 몰아내기 위해 바이든에 표를 던져주자는 캠페인을 진행하는 곳이다. 이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들어가면 굉장히 인상적인 표어를 볼수 있는데 “Mediocrity is better than malevolence” (평범한게 악한 것보다 낫다)고 한다. 이처럼 미국의 좌파 내에서도 바이든에 대한 지지는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여겨지고 있는걸 알 수 있다. 

사실 바이든을 진짜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또한 이번 대선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흑인과 히스패닉계의 진영 이동이다. 4년간 트럼프는 미디어로부터 인종차별주의자라는 프레이밍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흑인과 라티노들의 지지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지난 대선과 비교해 흑인과 라티노 커뮤니티에서 트럼프 지지율은 상승했다

특히나 라티노들의 트럼프 지지율은 엄청나게 올라갔는데, 아틀란틱의 기사에 따르면 텍사스주의 자파타 카운티는 100년만에 처음으로 공화당이 이겼다고 한다. 자파타 카운티는 미국에서 라티노 비율이 두번째로 높은 카운티다.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인 매사추세츠에서도 라티노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 트럼프의 득표율은 상당히 높았다. 미 원주민이 과반수를 차지하는 노스 캐롤라이나의 롭슨 카운티에서는 2012년에 오바마가 20퍼센트 차이로 이겼는데 이번에는 바이든이 트럼프에게 40퍼센트 차이로 졌다. 흑인 인구가 80퍼센트인 디트로이트에서도,비록 5천표라는 매우 작은 숫자지만, 트럼프의 득표율은 올라갔다.

인종 이슈는 낡은 떡밥

민주당과 주류 언론에서 아무리 트럼프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프레이밍해도 트럼프가  흑인과 라티노들로부터 표를 얻어낸 것은 현재 미국 정치의 판도가 어떻게 바뀌어 가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인것 같다. 인종주의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전략으로 전락하고 있고 비판적인종이론에 기반하는 미국의 극좌는 스스로를 더욱더 고립 시키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하원의석을 뺏긴 원인이라며 이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민주당내에서도 나왔고 미국의 진보 좌파를 대표하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의원은 “우리끼리 싸우지말자”, “이미 당내에 존재하는 분열을 가속화 시킬뿐이다”고도 했다.

민주당 분열의 최선봉

이번 대선을 보면 알 수 있는 또 다른 사실로는 주류 언론과 여론 조사 기관들의 예측이 대부분 틀렸다는 것이다. 만약에 이번 대선이 주류 언론과 숱한 여론 조사 기관들의 예측대로 흘러갔다면 조 바이든은 압도적인 우위로 이겼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여론 조사와 다르게 매우 근소한 차이로 이겼다. 오하이오 주립대의 토마스 우드 박사가 집계한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 전체에서 평균 6.2 퍼센트 차이로 트럼프가 과소평가 당했다고 하고 있다. 격전지중 하나였던 위스콘신은 무려 8.8 퍼센트나 여론 조사가 어긋났으며 알래스카는 22퍼센트나 어긋났다.

2020년 미대선 여론조사와 현실의 괴리

숱한 여론 조사 기관들이 샤이 트럼프 서포터들을 여론 조사에 포함 시키는 것에 실패했기 때문에 실제 득표율에서 이렇게 큰 오차가 났다고라고 밖에 설명이 안된다. 즉, 미국에서 여론 조사로 정평이 난 FiveThirtyEight 같은 곳에서 주장한 “샤이 트럼프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는 거짓이라는걸 알 수 있다.

샤이 트럼프 부정이야말로 현실부정이였다

그런데 샤이 트럼프 서포터라는게 왜 나오게 되는걸까? 여론 조사에다가도 본인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수준인건 뭔가 상당히 문제가 있다. 혹시 트럼프 지지를 못하는건 혹시 그게 “사회악”으로 규명 되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미국에서는 이제 트럼프를 지지했던 사람들과 트럼프 행정부의 모든 것을 조사 하자는 “트럼프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리자는 주장이 나오고있다. 현재 트럼프의 부정선거 소송에 가담한 변호사들도 신상이 공개된 상태다. 현재 미국 사회의 한 쪽에서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자들을 “악에 협조하는 진실에 반하는 자들”로 보고 있다.

트럼프를 돕고 싶다면 목숨을 걸어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진실은 뭘까? 현재 미국에는 두 가지 버전의 진실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바이든이 이겼다!”, 두 번째는 “부정선거를 밝혀 내자!”가 되겠다. 현재 미국의 정치 판도는 초양극화를 겪고 있다. 그 누구도 본인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으며 이는 양극화를 더욱더 심화 시킬 것이다. 만약에 트럼프가 무슨 증거를 잡아내어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그의 손을 들어주고 그게 트럼프의 기적적인 재선 성공으로 이어진다면 길거리에서 춤추던 바이든 지지자들에게는 이 사실이 어떻게 다가올까? 본인들이 알고 있던 모든 사실이 부정 당하고 세계관이 박살나는데에서 엄청난 분노를 느낄 것이다. 그리고 왜 분노를 느낄까? 왜냐하면 이들은 한 쪽의 주장만 듣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 지지자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

그런데 왜 이들은 서로 다른 현실에 살고 있을까? 그건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과 미디어의 수익 구조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유투브,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은 우리가 해당 플랫폼에 더욱더 오래 머물고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다는 등, 더 많은 참여를 유도하도록 설계 되어있다. 그리고 사용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분노를 일으킬만한 것”이라고 한다. 소셜 미디어 사이트들은 사용자의 행동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이러한 점을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사용자들을 아주 쉽게 끌어들일 수 있다. 그래서 전통적인 미디어인 TV와 신문은 자연스럽게 구독자를 잃고 있었고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2016년에 이들을 구원할 구세주가 등장 했다. 주류 언론도 사실 샤이 트럼프 서포터인게 아닐까? 쓰러져가던 언론 매체에 무한한 소재거리를 가져다줄 줬을 뿐만이 아니라 대중으로부터 분노를 일으킬만한 모든 요소를 갖춘 인물이였기 때문이다. 트럼프에 관한 기사를 더욱더 자극적으로 쓰고 시청자들의 분노를 더욱더 유도할 수록 시청률이 높아지는걸 보면서 언론 매체들은 쉴 새 없이 트럼프를 공격했다. 물론 트럼프가 잘했다는건 아니다. 트럼프 본인부터가 구설수에 오를만한 행동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졌다. 그러나 미국의 유명 언론인인 맷 타이비의 말을 인용하자면,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최고의 거짓말쟁이이자 동시에 거짓말의 가장 큰 피해자이기도 하다”. 

트럼프 이야기도 좀 들어보세요

곧 트럼프가 백악관에서 철수 할것 같으니 이제 언론 매체들은 “트럼프주의” (Trumpism)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그의 “잔재”가 미국 정치에 남아 살아 숨쉬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그들이 말하는 “잔재”는 과연 “트럼프주의”일까? 아니면 주류 언론과 소셜 미디어가 기꺼이 만들어낸 “분노”일까?

죽은 공명은 산 중달을 내쫓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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